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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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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91
2015년 02월 11일 17시 00분  조회:1801  추천:0  작성자: 죽림

 

 

901□목숨을 걸고□이광웅, 창비시선 73, 창작과비평사, 1989

  거칠지만 정신의 뼈대 같은 것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이것은 형상화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형상화 이전에 거기에 들어있는 어떤 믿음일 것이다. 그런 것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서 선언 비슷한 수준까지 갔지만, 그러한 판단들이 일정한 체험의 전제 위에 서있기 때문에 시가 허황하거나 들떠있지를 않다. 다만 이런 것들을 될수록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상력의 차원인데, 그것까지 요구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 될 것인가? <舊>를 남겨둔 것은 무슨 의미인가?★★☆☆☆[4337. 11. 17.]

 

902□뿌리에게□나희덕, 창비시선 95, 창작과비평사, 1991

  이렇게 건강하고 따스하던 세계가 어떻게 그런 고독 들추기로 바뀌었는지 놀랄 일이다. 이 시집에는 이웃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있고, 그들의 아픔을 감싸는 따스한 마음이 있고, 희망을 놓지 않는 굳센 의지가 서려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안의 슬픔으로 퇴영하여 곶감 빼먹기를 반복하면서 그 단맛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 날개를 떼어버리고 상처 난 누에가 되려고 하는 꼴이다. 무거운 생각에 붙잡혀있기 때문일까? 시들이 아주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직된 상태다. 이것을 벗어나면서 정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곳이 슬픔 각색, 절망 주연의 유치찬란한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로 돌아와야 할 것만 같다. 한자는 굴레다.★★☆☆☆[4337. 11. 18.]

 

903□철조망 조국□이동순, 창비시선 97, 창작과비평사, 1991

  너무 큰 주제에 짓눌려서 상상력이 움츠러든 형국이다. 조금 풀릴 듯하다가도 결국엔 그 무거운 압력 때문에 움츠러들고 만다. 안쓰러운 일이다. 일이 안 풀릴수록 안 풀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일은 풀리는 법이다. 특히 시를 쓰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마음이 무거우면 상상력은 움츠러드는 법이다. 움츠러든 그 상상력이 시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먼저 등을 돌린다. 시를 안 쓰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1. 18.]

 

904□겨울 기도□정대구, 문학과지성시인선 14, 문학과지성사, 1981

  시에서 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상당한 성취를 보여준다. 꼭 할 말만을 선택해서 압축하는 것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왕왕 할말을 추릴 때 그것이 설명으로 전락하지나 않나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곳곳에서 그런 분계점에 시들이 닿아있다. 무엇보다도 시집 전체에서 어떤 정서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 전면으로 드러나지를 않아서 시인이 그때그때 상황에 처할 때마다 시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런 시들일 한 자리에 모일 때는 정서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힘이 필요하다. 모든 역량이 드러나면서도 그런 점이 아쉬운 시집이다. 한자 역시 아쉽다.★★☆☆☆[4337. 11. 19.]

 

905□금빛 은빛□홍희표, 창비시선 64, 창작과비평사, 1987

  ‘씻김굿’이라는 부제가 시마다 달려있다. 결국 노래의 가락에다가 할 말을 실은 것이다. 어떤 일정한 양식에 기대어 자신의 할말을 하는 것은 아주 편하고 유리한 방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어떤 형식에 기댄다고 하더라도 시는 어차피 시다. 시가 지닌 긴장과 상상력을 드러내지 못하면 어떤 양식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거대 이데올로기를 시에 끌어들이는 데는 노래가 편하지만, 노래라는 그 타성에 안주해버리면 시가 되지 못하고 넋두리가 된다. 이 시집은 그런 위험이 너무 짙다.★☆☆☆☆[4337. 11. 19.]

 

906□지금 그리운 사람은□이동순, 창비시선 57, 창작과비평사, 1986

  풍경 뒤로 시인이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이런 시에서는 시인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시는 거추장스런 모든 장식을 떼버리고 말을 직접 건네는 방식인데, 그것을 안 하려니 고도의 작전이 필요하다. 그 작전은 묘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묘사는 선택과 상징의 문제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냉정해져야 하고, 할 말을 최대한 숨겨서 선택된 이미지가 스스로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너무 성급하게 할 말을 겉으로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멀찌감치 물러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밀하고 깔끔한 묘사가 이렇게 해서 효과를 반감시켰다. 1부의 농구에 대한 시는 그 의도나 방법에서 분명하지만, 그 분명함이 시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의 감흥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선명도는 다른 것이다. 한자는 선명도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4337. 11. 20.]

 

907□네 눈동자□고은, 창비시선 66, 창작과비평사, 1988

  이 시집은 반발력으로 쓰여진 시이다. 반발력은 저항의 힘이다. 어떤 힘을 전제로 한다. 그 힘은 기존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찍어누르는 대로, 그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모든 현상을 파괴하고 비꼬는 방향으로 시심이 작용한다. 어떤 시대에는 이런 심리와 경향이 그대로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고은의 시는 그런 시대를 대변해왔고, 잘 드러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에서는 일관성이 없는 법이다. 그 일관성은 그 이전의 억압된 세계 때문에라도 이루기 어렵다. 일관성을 이루는 순간 세계는 그 일관성을 바탕으로 억압의 기제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이유를 묻지 않고서 반발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런 영역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다. 그러니 어떤 잣대를 가지고 측정하기는 어렵다.★★☆☆☆[4337. 11. 20.]

 

908□사월에서 오월로□하종오, 창비시선 43, 창작과비평사, 1984

  민중시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나오지 말았어야 할 시집이다. 이런 시들이 진정한 시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이 시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동일한 소음을 계속 반복하는 자동차 엔진소리 같아서 운전자에게 졸음을 유발한다. 막연한 관념성, 체험이 빠진 상태의 대리 발언, 무엇을 노래하려는 것인지 불투명한 애매모호함, 어느 것 하나 시로서는 건질 것이 없다. 실패한 사랑시들이 좋은 사랑시들을 외면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시라고 써서 발표하면 독자들만 떨어져나갈 뿐이다. 시라고 해서 시집을 사보는 독자들의 심리는 어렵고 안 어렵고를 떠나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없어도 새로운 맛이 나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그런 기대감을 짓밟는 묘한 힘을 발휘하는 시들이다. 그러니 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왕에 나왔으니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시집이다. 한자까지 섞여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4337. 11. 21.]

 

909□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이가림, 창비시선 27, 창작과비평사, 1981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문장력도 좋고, 호흡도 제법 길어서 별로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딱 한 가지가 빠졌다. 주제가 너무 뒤로 후퇴했다는 점이다. 드러내야 할 부분에서 과감하게 드러내지를 못하고 자꾸 이미지 뒤로 숨는 바람에 시 전체가 맥이 풀린 그런 경우이다. 무엇보다도 전하고자 하는 분노의 감정이 시의 밑바닥에 깔려있어서 좀처럼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터져야 할 곳에서 터지지 않고 그대로 끝나는 그런 느낌이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한자는 더욱 아쉬운 문제이다.★★☆☆☆[4337. 11. 21.]

 

910□북 치는 앉은뱅이□양성우, 창비시선 23, 창작과비평사, 1980

  운율이 아주 잘 살아있다. 운율이 잘 살아있다는 것은 말을 통해서 시를 쓴다는 얘기다. 그것은 무언가 전할 말이 있는데,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을 경우 가장 흔하게 택할 수 있지만, 또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치열한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운율이 잘 작동하고 있다. 모호한 듯한 점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특정한 사실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서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거다 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시대 전체의 분위기와 개인의 내면 풍경이 잘 맞물려서 나름대로 호소력을 얻은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그런 감정의 복판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청산되지 않은 한자는 끝내 흠이 될 것이다.★★★☆☆[4337.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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